1. <아이 캔 스피크> 줄거리
영화의 주인공 나옥분(나문희) 할머니는 구청에 잦은 민원을 넣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녀의 별명은 '도깨비 할매'이다. 그런 옥분에게는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바로 영어를 배우는 것이다.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영어 수업에도 참여해 봤지만 그녀의 수준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영어 학원에 갔더니 수업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결국 옥분은 반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옥분은 구청에서 일하는 직원 박민재(이제훈)가 원어민과 유창하게 대화하는 것을 목격한다. 옥분은 민재를 찾아가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민재는 옥분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는 것이 번거로워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외워오라고 시킨 후 80점이 넘으면 영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다. 옥분은 열심히 단어를 외웠지만, 단어 시험에서 75점을 받는다. 민재는 그런 옥분에게 약속은 약속이라며 영어를 가르쳐 줄 수 없다고 말한다.
민재에게는 고등학생 동생이 있다. 그의 이름은 박영재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하늘 아래 가족은 동생 영재와 민재 둘뿐이다.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민재는 길을 걷고 있는 영재를 발견한다. 그는 버스에서 내려 영재의 뒤를 따라간다. 어느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서던 영재는 한 수선집 가게로 들어간다. 가게 안으로 따라 들어간 민재는 놀랍게도 그곳에서 옥분 할머니를 마주한다. 그곳은 바로 옥분 할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였다. 할머니는 영재에게 자주 저녁을 챙겨주었다. 늘 혼자 밥 먹기도 적적한데 잘 됐다며 영재에게 따뜻한 저녁을 챙겨주는 모습에 민재는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옥분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말한다. 과외비는 따로 받지 않았다. 그저 한 번씩 동생의 저녁을 챙겨달라는 부탁을 하며 그렇게 둘의 영어 과외는 시작되었다.
옥분은 늘 혼자였다. 자식도, 손주도 없었다. 그런 옥분에게 아주 어릴 적 헤어진 남동생이 한 명 있다. 그는 미국에 살고 있었고 한국어를 할 줄 몰라 옥분과 전혀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옥분은 자신이 영어를 배워 동생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정을 알게 된 민재는 옥분의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동생은 옥분과 연락을 하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민재는 옥분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고 시험 일정이 바쁘다는 핑계로 더 이상 옥분에게 영어를 가르쳐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일상을 살아가던 옥분은 친구 정심이 아프다는 연락을 받는다. 정심은 옥분의 어릴 적 친구다. 둘은 옥분이 13살 때, 일본군 위안부에서 만났다. 함께 아픈 상처를 겪어온 친구였다. 옥분은 정심이 미국에서 열리는 위안부 공청회에서 증언을 하려 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런 옥분은 정심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 날을 위해 자신이 영어를 배우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사연을 알게 된 민재는 다시 옥분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게 된다. 옥분은 마침내 워싱턴 DC에서 열린 위안부 공청회에 참석하게 된다. 드디어 정심의 꿈을 이루어주고 그날의 상처에 대해 밝힐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 그녀에게 한 가지 큰 문제가 생겼다. 옥분은 자신을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을 하지 않았고, 이를 알게 된 일본 측에서 증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공청회 발언을 반대한 것이다. 이 사실이 뉴스에 보도되었고 한국에 있던 민재는 옥분을 위해 구청에 방문하는 시민에게 탄원서를 받아 제출한다. 우여곡절 끝에 공청회에서 발언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지만, 여전히 반대 의견이 거세게 제기되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려니 너무도 떨렸고, 그녀를 증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들에 옥분의 정신은 혼미해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민재가 나타냈다. 옥분이 자신에게 보여줬던 어릴 적 위안부 사진을 들고 공청회에 나타났고, 그 사진을 증거로 제출할 수 있었다. 민재를 본 옥분은 정신을 차렸고, 용기 내어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 낱낱 증언한다.
2. 감상평 및 후기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그들이 받은 아픔을 자신들이 증명해야 하고, 스스로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해야 한다는 사실도 씁쓸했다. 고작 13살의 나이밖에 되지 않았다.
오늘은 3월 1일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3월 1일이 단순한 쉬는 날, 연휴가 아닌 모진 날들을 겪어낸 그들에게 잠시나마 위로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감히 위로라고 표현하기에도 조심스럽지만.